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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원장 스님 법문

삼월 정기법회 법문(대행 큰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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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한 오늘, 과거도 없고 미래도 없고 오늘 현재도 공한 이 한자리에 모두 모였습니다.

오늘은 또 더군다나 경칩이라 개구리 입이 떨어진다고 하는 날이죠. 여러분도 그와 같이 다 눈 뜨고 귀 뜨고 입 뜨고 그렇게 되시기를 바라면서 오늘 시작하겠습니다.

이렇게 지내오다 보니까 사람들 사는 전부 하나하나가 에누리가 하나도 없더군요. 자기가 어떻게 살았느냐에 따라서 모습도 삶도 또 원력도 그렇게 전부 끼리끼리 가지고 나오죠. 요만큼도 에누리 없이 말이에요. 그러니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할지 다 아시겠죠.

그리고 공생이다 공심이다 공체다 공용이다 공식이다 하는 그 뜻을 새삼스럽게만 생각하지 마세요. 일상생활에서 이미 그렇게 살고 있기 때문이죠. 어렵게 생각해서 넓게 보지 마시고 개개인의 나 하나로 생각해 보세요.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생명체가 내 몸 안에 다 들어 있는데 내 세포가 모두 법망입니다. 타의에서 들어오고 자의에서 나오고 하는 문제들이 걸려 있죠.

이게 바로 내 몸체 하나를 놓고도 공생으로 살고 있다는 겁니다. 그리고 공심이며 공체며 공용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네 가지가 한데 합쳐진 것이 바로 공식입니다. 이 공식으로서 우리가 세상살이를 해 나간다 이럴 때, 내가 늘 말하죠, 둘로 보지 말라구요. 또 공생이니깐 내 생도 둘로 보지 말라. 이것도 즉 말하자면 생사가 걸린 문젭니다. 공생으로 살아야 생사에 걸리질 않는다. 공심으로 살아야 더불어 같이 사는 도리를 안다. 또 공체로 살아야 사랑 없이 사랑할 수 있다, 착이 없이 사랑할 수 있다, 이 소립니다.

그리고 더불어 전부 공용을 하고 있다. 이 몸뚱이 하나 속에서 모두 공용을 하고 있기 때문에 보는 것도 공용, 듣는 것도 공용, 말하는 것도 공심으로서 공용하는 겁니다. 움죽거리는 것도 만나는 것도 가고 오는 것도, 일체 일거수 일투족이 다 공용으로서 움죽거리고 있기 때문에 함이 없이, 그냥 그대로 함이 없이 하는 것이다 이러는 겁니다. 누가 그거를 따지라는 게 아닙니다. 그냥 내 마음 속에서 저절로 그게 한 몸뚱이가 공생이며 공용 아니냐. 그러니까 물 한 컵을 먹어도 내가 먹었다는 게 없이 먹었다 이 얘기죠.
늘 이런 소리를 합니다마는 우리가 봉지가 적으면 뭘 하고 크면 뭘 합니까?

우리가 사는 지구가 공기주머니라고 한다면 이 몸뚱이 하나도 주머닙니다. 이 몸체 안에서 생명이 나가면 죽듯이 이 지구안에서도 생명이 나가면 죽어집니다. 그건 모두 아시리라고 믿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해야 만이 내 몸뚱이 안에서 벗어나고 내 지구 안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이게 공생인줄 알고 공용으로 공식하는 거를 알면 바로 지구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잘하고 못한다 이런 것도 따질 것이 없다는 것을 이해하신다 이겁니다. 잘하고 못한다 또는 강도다 선지식이다 또 이건 나쁘고 이건 좋다 이렇게 따지지 않아도 이해가 갈 수 있게끔 되는 겁니다. 이건 공생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를 들어서 어느 분이 둘로 보지 않는 분인데 어떤 사람이 죽일려고 할 때 어떻게 자기를 자기가 죽이겠습니까? 보이지 않는 데선 환히 보이거든요. 마음만 먹으면 마음이 그렇게 통해서 돌아가니까요. 물 속에서 노는 고기한테도 마음을 통하려고 한다면 통하고, 나무하고도 통하려고 한다면 통하죠. 그러기 때문에 일체 만물하고도 더불어 둘 아니게 통한다. 그러면 선지식과 중생은 따로냐? 따로가 아니다. 우리 몸을 봐라, 몸체를 보면 알 수 있을 거다 하는 거죠.

우리가 우리 몸뚱이를 형성시킬려면 어떤 것이 있어야 되느냐.

바로 불성이라고도 하고 별성이라고 하는 그 자체가 들어가야 합니다. 물론 정자 난자도 필요하죠. 그래서 그 세가지가 한데 합쳐져야 임신이 된다 이겁니다. 이 세상 만물이 다 그런 이치에 의해서 생겨나죠. 생명체가 있는 것이라면 사람이든 짐승이든 다 똑같은데 만약 미생물로 살았다면 그 미생물의 습성이 있어서 다른 모습으로 쉽게 화하질 못하는 것 뿐이죠. 몰라서 화하지 못하는 그 까닭에 모습을 또 그렇게 가지고 나오고, 지혜롭지 못하기 때문에 잘 못살게끔 가지고 나오는 거죠. 누가 못살게 하고 안하고가 없어요.

이 세상에 나와서 권리를 가지고 사는 것도 자기가 가지고 나오는 거죠. 누가 주는 게 아니라 자기가 가지고 있기 때문이죠. 그러기 때문에 요만한 거 하나도 살아나가는데 에누리가 없다. 그러니 말없이 채찍질을 하고 가르치는 일이, 사람을, 진짜 사람 아닌 사람을 만들기 위해서 채찍질을 하는 거구나, 이럴 수가 있죠.

우리는 항상 인간의 내부는 생각지 않아요. 외부의 것만 생각하죠. 이 몸뚱이만 생각하는데 무게로 따진다면, 에너지로 따진다면 이 안 내부가 무게가 많다면 겉의 물질인 이 껍데기는 한 웅큼 밖에 더 되겠습니까? 우리 몸뚱이 뿐만 아니라 일체 지구도 그렇고 은하계도 그렇고 달도 그렇고 태양도 그렇고 모든 게 그렇습니다.

인간에게 세포가 있다면 인간의 세포가 바로 우리가 말하는 법망입니다, 법망. 인간에게만 있는 게 아니라 땅에도 있고 나무에도 있고 지구에도 있고 태양에도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를 알면 전부를 안다. 하나에서 지혜가 터지면 둥글게 더하고 덜함도 없는 도리를 안다. 그래서 어디에서 배우든 부처님 말씀 한 마디만 알아들어도 그것은 다 알 수가 있지 않느냐 이겁니다.
   
사찰은 많지만 사람이 없다면 부처가 없느니라.

사찰은 많지만 사람이 없다면 부처가 없느니라. 이 말 한마디 말입니다. 아무리 머리를 깍고 승복을 입었어도 제대로 된 사람이 아니라면 부처가 아니다 라는 얘기죠. 내가 이 소릴 가끔 하죠. 부처님은 일대사의 인연을 맺으셔서 미생물 같은 생물 하나도 버리지 않으셨다고요.

그 내면에 있는 뜻은 뭐냐. 그 말씀은 바로 부처님은 미생물로 화할 수도 있고 짐승으로 화할 수도 있고 찰나찰나 그냥 모두 자기가 되는 거예요. 여러분이 가정에서 아빠가 되고 남편이 되고 자식이 되고 형제가 되고 이렇게 자동적으로 찰나찰나 넘어가면서 그 노릇을 하듯이 부처님께서도 모든 일거수 일투족 하나도 버림 없이 그렇게 스스로서 작용이 되신단 얘기죠. 그러니 우리가 누구를 깔보고 미워할게 아니라 저절로 그 공도리를 둘 아니게 알 수 있다면 거지도 미워하는 법이 없고 그냥 저절로 잘하고 못하고 이걸 떠나서 한마음이 되어 줄 수 있죠.

이 세상 도리를 알려면 얼마만큼 많이 극복을 하고 훨훨 털고 일어나야 될지 모르는데 그저 조그만 거 가지고 네가 틀리다 내가 옳다 하고 따지다 보면 아마 몇 생을 죽었다 또 태어나도 깨우치질 못하고 연방 이 수레바퀴에 말려서 굴러갈 겁니다. 그러니까 뛰어 넘어라 뛰어 넘어라 하는 겁니다.

여러분의 각자의 마음을 우습게 생각하지 마세요. 여러분의 주인공을 우습게 생각하지 마세요. 바로 수억겁 전으로부터 진화해서 형성되어 올라 온 자기의 장본인이니깐요. 내가 가끔 이런 말을 하는데요, 만약에 우리가 사는 지구에 딴 혹성이 부딪치게끔 달려온다면 어떻게 해야 그걸 부딪치지 않게 할 수 있을까요? 어떻게 해야 모든 생명들이 다 살고 이롭겠습니까?

달마대사를 잠깐 생각해 봅시다. 큰 구렁이가 죽어서 썩고 있으니 그 냄새가 진동하여 아무도 그 마을에 접근을 못하고 있거든요. 그러니 그걸 치울려니까 그 구렁이 속에 들어가서 멀리까지 가서 치우고 오더라 이겁니다. 지금 이 공부하시는 분들이 잘하고 못하고 간에 진짜로만 믿고 하실 수 있고 찰나찰나 둘 아니게 돌아가는 도리만 아신다면 그 혹성에 들어가서 그것을 아무 일도 없는데다 옮겨 놓고 지구를 살릴 수 있죠. 그렇게 할 수 있는 것이 바로 여러분의 샛별이란 말입니다. 별성이라고 하기 보다 불성이라고 할까요, 불성.
우리가 때로는 지수화풍을 아무 것도 아니라고 생각하기 쉬우나 사실은 제일 중요한 거예요. 우리가 애당초에 어디서 생명이 생겨 나왔나를 생각해 보세요. 바람과 흙과 물 이 세 가지가 뭉쳐서 돌아다니다 보니깐 그 속에서 원기가 생겨서 생명이 생기게 됐다고 하면 여러분은 이 말을 믿으시겠습니까? 아시는 분도 많이 계시겠지만 그거를 무심하게 돌리지 마시고 아주 중요하다고 생각을 하셔야 합니다.

지수화풍 아니고선 생겨난 게 없거든요. 어떤 물질이든지 지수화풍으로 생겨나서 다시 지수화풍을 먹고 살죠. 지수화풍 네 가지 중에 한 가지만 없어도 우리는 대고통을 받죠. 그것으로 태어난 모습이기 때문이에요.

그러니 은하계에 별성이라 하더라도 바로 자기가 은하계예요. 생략해서 말하지만 자기 하나가 있다면 그 관리를 어디서 하느냐. 바로 칠성에서 합니다. 이 사람 관리라는 것이 생명을 주고 생명은 그 생명로 살게끔 하는 거, 그리고 자기가 어떻게 사느냐에 따라서 나오는 문제들 이런 거죠.

그 문제들을 생각해 본다면 만약 몸뚱이 속이 암흑이라고 한다면 그 암흑 속에는 에너지가 가득해서 연료가 많은데 껍데기는 한줌 밖에 안된다. 은하계든지 어느 부분에 그 캄캄한 암흑 속은 전부 에너지를 뒷받침해서 바로 우리의 생명을 살리고 일체 만법을 유동성 있게 관리하는 문제들이다. 그러면 암흑과 밝음이 둘이냐. 둘이 아니다 이거죠. 그렇게 둘이 아니게끔 에너지가 있어야 만이 밝음을 가져 오는 거니깐요.

우리가 하면서도 함이 없이 한다 이런 게 있죠. 이 뜻을 과학자 여러분은 미처 생각을 못하죠. 왜 이렇게 사람들이 움죽거리고 모든 걸 생각으로 기억해 내고 왜 이렇게 어둡게 살고 왜 이렇게 밝게 사나. 그런 것들이 어디서 다 나오나, 이런 걸 말이에요. 그렇지만 우리는 지금 잘못하고 잘하고를 떠나서 그 뒤에 면, 즉 그 과거를 보지 못하면 지금을 알 수 없죠. 반면에 현재 자기가 어떻게 사는가를 알면 과거에 어떻게 했다는 걸 알 수 있게끔 되죠. 또 현재를 보면 미래를 알 수 있고요.

모두가 참 지혜롭고 자유스러워야 되겠죠. 우리 마음이 따뜻하고 둘로 보지 않는다면 그것은 바로 사랑 없는 사랑이죠, 진짜 사랑이요. 그러기 때문에 불쌍한 사람을 보면 같이 눈물이 나는데 이건 둘이 아닌 까닭이에요. 에너지가 큰 덩어리가 있다면 거기에서 모두 별성이 하나하나 나왔고 그 별성은 다 여러분한테 주어졌거든요.

큰 별을 블랙홀이라고 하죠. 그런데 그 블랙홀은 왜 블랙홀이라고 하고 그렇게 많은 별 중에 왜 특별나게 그렇게 크냐, 이런 것 생각해 보셨습니까? 우리가 살고 있는 거나 그 모든 게 우리가 볼 수 없는 데서 우리의 삶이 나온다는 것, 이 인간도 수명이 다 되면은 껍데기가 벗어지고 알맹이 원소만 남아서 그 원소가 또 다시 반복해서 콩나무가 되고 또 콩이 열리고 그렇게 되듯이 우리 별성도 때가 되면 옷을 벗고 원소 자체만 남는 거예요.

그럼 암흑으로 들어가죠. 그래서 전부 그것이 한데 합쳐지면서 순환을 하죠. 그게 다 형성되도록 순환이 돼서 나중에 그게 터지면 별성들이 헤아릴 수 없이 나오죠. 그렇게 반복하는 이 시대에 우리가 진짜 사람이라면 이 마음공부를 안 할 수 없죠. 한마음공부 즉 말하자면 공심, 공용 공체 공생 공식 이거를 내 몸 하나면 다 알 수 있다. 그러니 꼭 이 공부를 해야만 된다 이런 문제죠.
 
 
그런데 우리가 잘 되기 바라고서 절에 가서 ‘살려주시오. 내가 잘 할 테니 잘 주시오. 좋은 일을 이렇게 할 테니까 참 잘 되게 해 주시오.’ 이렇게 한다면 항상 얻어먹는 거지와 같다. 목 마를 때 남의 집에 가서 물 한 바가지 주시오 하는 거나 똑같다는 얘기죠. 내가 벌어서 내가 먹을 생각 안하고 남이 벌어 놓은 거 한 바가지 달래서 먹는 격이에요. 그게 기복이에요.

몇 시간 후에 죽는다 이러더라도 죽는 거를 애석해 하지 말고, 죽기 이전에 이 모습도 내 모습이 아니니 내 주인의 내 모습을 만들어서 내가 이끌어 가는 거니깐 고맙게 생각하고 착을 갖지 마세요. 둘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내가 빨리 죽는다 늦게 죽는다 여기에 얽매일 필요가 없죠. 주인이 잘 쓰면 고장이 덜 나겠죠. 이 몸이 자동차라면 말입니다. 운전수인 주인이 그 차를 잘 쓰면 고장도 덜 날 거고 고장이 나도 운전수가 다 고치겠죠.

그런데 이 차 껍데기인 내가 언제 죽느냐 여기에 애탄기탄 해 본들 뭘 합니까? 아무 소용 없어요. 어리석다고 그래야 되나 어떻게 되야 되나. 그걸 건너다 보고도 껄껄 웃게끔 될 수 있는 거, 소가 싸움을 해도 그 소의 경지를 다 알 수 있고 그걸 거들어 줄 수 있어야 되죠. 죽어서 얼른 소의 모습을 벗어나고 넌 인간으로서 공부를 해라 이런 마음이 있다면 그렇게 죽어도 좋게끔 할 수 있는 거죠. 그러니 죽이는 것도 공법이고 살리는 것도 공법입니다. 죽인다고 해서 죽이는 게 아닙니다.

그러니 여러분이 이렇게 따지고 저렇게 따지다가는 길을 못 가시니까 악이든지 선이든지 그냥 한군데다 놓고 가세요. 그러다 보면 따지는 일이 돈을 주고 하래도 못하죠. 왜냐. 만약 거짓말을 해서 이렇게 돌아가다가 보세요. 마음이 얼마나 괴로운가. 그 거짓말을 감추기 위해서 또 거짓말을 하게 된다면 얼마나 거북하고 마음이 괴롭겠습니까? 마음이 항상 떳떳하지 못하고 펴질 못하는 문제들이 많기 때문에 길이 막힌다 이런 뜻이죠. 그러니까 우리가 무슨 역할을 하고 사시든지 자기가 알고 있는 데에 대해서 생각을 한다면 그게 연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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