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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원장 스님 법문

2007년 6월 보름법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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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6월 보름법문

감 사 합 니 다.
오늘 법문은 여러분들 마음공부하는 핵심을 아주 요약해서 법문을 해주셨는데,
실천하고 가는 건 여러분들한테 달려 있는 겁니다. 기억을 새롭게 하는 걸로  제일 중요한  것은 공한 이치를 알아라하는 겁니다.
그게 '주인공' 입니다.
그래서 여러 가지 비유를 써서 정말 많이 전해드렸는데도 십년이 다 가는데도 관하는 도리를 모르겠다고 하시는 분들도 계세요. 그것조차도 감사한 겁니다.
그 관하는 도리를 모른다고 스님한테 물어보는 건 굉장히 감사하고 좋은
일입니다.
자기가 모르는지 아는지 남한테 보이는 게 부끄럽고 싫어서 그냥 절에 다니면서도 관하는 걸 모르고 가는 분들은 더 위험하죠.
공한 이치를 알아라. 어떤 게 공한거냐?
문득 떠오르는게 이겁니다.
여러분들 몸을 보세요.
어떤 일을 해 나갈 때  눈, 귀, 코, 혀, 몸 ,뜻 오장육부 다 포함되어서 움직이는데 눈이 했다고 합니까. 머리가 했다고 합니까. 손이 했다고 합니까.
이런 이야기 제가 말씀 많이 드렸습니다.
그런 것처럼 그냥 사시듯이 우리는 온 우주법계라고 하는 것이
부처님의 한 몸입니다.
우리는 한 몸에 머리털에 해당이 되는지, 발톱에 해당이 되는지, 오장육부
부처님이라고 하는 자리에서  어디에 속해서 지금 살고 있는지 모릅니다.
지금 그 법문을 해주신 겁니다.
내 몸뚱아리를 봐도 함이 없이 고정됨이 없이 가고 전체 속에서 나를 봐도 내가 어디에 속해서 어떻게 움직이는지도 모르고 가는 거예요.
그래서 저는 그 공한 이치를 알아라 하는 대신에 요즘은 ‘나는 아무것도 모른다. 아무 것도 모르는 나를 쓰고 가는 것이 내 주인공, 일체 부처님의 마음이다.’
이 마음만 갖고 가시라 이렇게 이야기하죠.
그러다보면 저절로 하나하나 살아가는 것이 진짜 법문으로 다가옵니다.

간혹 가다가 어떤 분들은 제가 상단에 보면 내가 내 근본자리에 일임하고서
부처님 자리에 갖다 놓은건데 왜 스님이 또 그걸 하지 그러는 분들이 계세요.
축원카드라든지 이런 걸 보면 내가 부처님 자리에 올려놓은 건데 그걸 스님이 왜 또 해. 의외로 그런 분들이 있습니다.
그 분들은 자기 역할을 모르는 겁니다.
다 역할 소임이 있습니다. 지금 얘기했듯이 몸안에도 눈,귀,코,혀,몸,뜻으로
움직이고 그것으로 해서 오장육부의 기관이 있고, 그래서 어떤 것 하나가
결정이 되어서 진행이 되는 것처럼 보이지 않는 부처님 자리에 여러분들
마음을 토하게 하는 것이 그 허락받은 승의 자리 입니다.
여러분들이 만약에 직접 내 부처님전에 그렇게 쓰겠다고 하면 그냥 불전에
하시면 됩니다.
이게 각자 안보이게 은밀하게 그렇게 법계에 통하게 하는 철저한
관문이 있습니다.
그것이 아까 처음 얘기하신 것, 보이지 않는 막을 쳐서  보호할려고 하는 그런 것들이 있다 하는 그 보이지 않는 소임에 드러나는 자리에 이런 승들이 있는 겁니다.
그것이 불법승이예요.
보이는 불, 보이는 법, 보이는 승이 여러분들이 그렇게 갈 수 있도록 하는
안전망입니다.
그런데도 그 뜻을 잘 헤아리지 않고 여러분들 생각으로 보이는 부처님
보이는 승 보이는 법을 그렇게 씁니다. 다 각자 자기 자신의 생각으로.
그걸 일임할 수 있어야 돼요.
여러분들이 어떤 것이든지 나오게 한 자리에 일임하지 않으면 거기에 매입니다.
이 공부할 때에 어찌 보면 하는 사람들이 위험할 수가 있어요.
운전하는 사람들이 운전하기 때문에 위험한 것이 있는 것처럼
그렇게 있다 이렇게 표현을 하죠.
도로, 경찰에 해당이 되는 것이 승의 자리일 수도 있다 이겁니다.
승은 경찰관도 돼요. 여러분들이 그렇게 가는데 너무 고속 질주하면 사고가
나니까 막죠. 그러는 것처럼 못해서 그러는 것이 아니라 위험하기 때문에
막는 경우가 있습니다.
근데 중이 공부도 못하면서 공부하는 나를 이렇게 막냐. 이러죠.
그게 바로 둘로 떨어지지 않습니까.
한 찰나에 너와 내가 나눠지면 그건 벌써 벼랑 끝으로 떨어졌다는 걸
자각해야 됩니다.
이게 물샐 틈 없는 마음, 아까 한생각으로 해서 선악이 나눠지죠.
그 한생각이 그렇게 지옥 극락으로 나눠지는 겁니다.
여러분들이 한생각을 다스리는 것이 우리 마음 공부고,
여러분들이 진짜 차원을 높게 해서 자기 인연들을 다 건질 수 있느냐 없느냐도 거기에 달려 있어요.
마음 한생각 그거 다스리는 건 나오게 한 자리에 일임하는 것밖에 없습니다.
아주 단순합니다.
어떠한 상황에서도 일임하지 않으면 다쳐요, 제가 죽을 고비를 몇 번이나 넘기고 또 저도 위기를 아주 많이 겪고 이렇게 가면서 보면 내 잘났다고 순간 고개를 쳐들었을 때입니다. 나를 내세웠을 때.
그 나가 나를 아주 예리하게 치고 들어와요.
진짜 빛보다도 빠른 게 마음이고 그렇기 때문에 아주 정신없이 치고 들어옵니다.
저도 한 여섯 일곱번의 위기를 넘어서 지금 이 자리에 있는데 또 어떻게 갈 지 모릅니다.
그래서 지금 생각하는 건 다른 게 없습니다.

진짜 나는 무조건 어떤 것이 들어닥치더라도 그냥 내 근본자리에서 다 하는 거다 하는 일임하는 자세, 그것만이 전체를 다 건지는 겁니다.
우리는 부처님 자리에 진짜 위장에 들어있는 무슨 미생물이 되었는지, 뭐 그런 것도 모르는 거거든요. 부처님 위에 미생물이 나일 수도 있거든요. 발톱에 때가 나일 수도 있는 거예요. 광대무변한 부처님의 우리는 어떠한 역할로 있느냐 모르죠.
그러니까 모르는데 뭘 안다고 합니까. 부처님이 다 알아서 쓰시는 거지.
자빠지게 하는거나 일어나게 하는거나, 다 부처님 자리에서 하는 거다 하면 그게 저절로 자기도 건지고 남도 건지는 마음자세고, 아주 단순하고 이러한 마음이 관하고 믿고 놓는 겁니다. 어려운 게 없어요.
그렇게들 정진하고 가시라고 하는 것이 이도량이 있는 뜻입니다.
저는 이 도량에 이 뜻이 없으면 이 도량은 의미가 없습니다.
신도가 아무리 많아도 이 도리를 참구하고 실천하고 가지 못하면 저는 이 도량은 죽은 도량이라고 생각해요.
아무리 사람이 없어도 단 한 사람이라도 진짜 나 있는 자리에 일체 부처님이 항상 같이 계시고 그래서 어떤 것이든지 거기서 하는 것이라는 진실한 믿음으로 그렇게 믿고 실천하고 가신다고 그러면 그것은 생명의 도량이죠.
숨 끊어진 거나 마음 끊어진 거나 똑같습니다.
여러분들의 이 도량을 얘기하는 게 아닙니다.
여러분들의 살림살이를 얘기한 겁니다.
몸뚱아리 어차피 죽는 건데요. 죽는지 알면서 사는데, 그동안에 살면서 우리가 해야될 게 뭐냐 이겁니다.
이렇게 정직하게 말씀드리는데도 못하고 가시죠.
어차피 죽고 가는 걸 다 알면서, 사는 동안 해야 될 게 뭐냐 이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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