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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님과의 대화

Re: 다시 초심으로 돌아가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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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종성:


 내일 큰 시험을 앞두고 마음이 혼란하여 내가 그 동안 어떻게 살아 왔는지를 정리해보며 예전 대학시절 적었던글을 올리며 마음 다잡아 봅니다.  
 
 저는 절에 다니는 것을 참 좋아했습니다. 마치 어린아이가 놀이터에 놀듯이 할머니와 함께 혹은 어머니와 함께 자주 절을 찾았고 자연스럽게 절 문화가 몸에 베이고 불심은 커지게 되었습니다.
 
  절을 찾을 때면 으레 좌선을 했었습니다. 기실 절을 다님에 있어서 제일 싫었던 것이 좌선이었는데 다리를 모으고 눈을 감고 손은 선정인을 한 채로 가만히 있기란 어린 녀석에게는 쉽지 않은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또한 눈을 감고 가만히 있다고 해서 좋을 것도 없고 시간만 낭비하는 바보 같은 일이라고 생각했었습니다.
 
 그러던 제가 중학교에 올라가고 갑작이 의문이 생겼습니다. “사람이 왜 살아야 될까?”라는 의문이었습니다. 아름다운 사랑의 끝에는 어쩔 수 없는 이별의 슬픔이 있고, 탄생의 아름다움은 있으나 죽음이라는 슬픔이 곧 기다리고 있는데 굳이 살아가야 할 이유가 없었습니다. 그렇다고 이런 의문을 누군가에게 말을 할 수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제 나이가 한창 반항을 시작할 나이였기 때문에 부모님 혹은 주위 사람에게 걱정을 끼칠 것 같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말 못할 고민을 안고 있던 저에게 스님께서 말을 먼저 던지셨습니다. “종성이 요즘 무슨 고민 있어?” 저는 가만히 있다가 스님께 여쭈었습니다. “제가 사춘기라서 반항을 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의문이 생기는 것이 있는데, 사람이 왜 살아야 갰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때 스님께서는 좌선을 권하셨고 저는 절을 찾을 때면 법회에 참여하지 않고 참선을 하고 집에서도 틈틈이 좌선을 했습니다. 그렇지만 하면 할수록 계속되는 것은 부정한 생각뿐이었습니다. 모든 것은 시작은 아름다우나 결말은 슬펐기 때문입니다. 아름다운 꽃도 결국은 시들고, 활기차게 피어나도 꽃잎도 말라서 떨어지고 부모와 자식간의 사랑도 한사람의 죽음으로 먼저 끝나버리는 그러한 결론이었습니다. 혹 아름다운 사랑이었다고 말은 하나 결과는 비극이라는 생각이 계속 되었습니다. “죽지 못하니까 살아야 하나?” 답을 못 찾고 힘들 때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프고 힘들고 슬프고 괴로움을 즐기면서 살아야 갰다.” 하지만 어린 저에게 아프고 힘들고 슬프고 괴로움을 즐기면서 살아야 한다는 결론은 너무 슬펐습니다. 또한 그것을 지키고 살아가기란 힘들다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다시 참선을 하던 중 아버지께서 자주 하시던 말씀이 떠올랐습니다. “좋고 나쁜 게 어디 있냐고?” 맞다 내가 너무 좋고 나쁨에 얽매여 삶을 부정적으로 바로 보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좋고 나쁘다 기쁘다 슬프다는 것 또한 사회시간에서 배웠듯이 사회화를 통해서 학습되어져 내가 그렇게 생각할 뿐 좋고 나쁨은 없었던 것이었습니다.
 
  누구나 다 부처가 될 수 있다고 했는데 나도 착하게 열심히 살아서 부처님이 되어야 갰다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이번학기가 시작되면서 저는 학회장이 되었습니다. 힘들지 않을 것 같았던 학회장의 자리인데 시간이 갈수록 점점 힘들어졌습니다. 저를 도와주겠다고 말하던 교수님, 조교선생님, 선배님들이 도와주지는 않고 모두가 자기의 의견을 지켜지기를 바람 뿐이었습니다. “사람들이 왜 저럴까?” 힘들었습니다. 그래서 좌선실습을 하면서 화두를 사람의 마음으로 잡게 되었습니다. 왜 사람이 사람을 힘들게 할까? 서로가 도와가며 웃으며 행복하게 할 수 있는데 왜 나를 힘들게 할까 저는 계속 다른 사람들을 원망하며 남의 탓으로 돌리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의 이해시키고 도와주기를 호소하고 있을 뿐이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종을 치는 모습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때 문득 이런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저것은 종이 우는 것일까? 아님 종을 때리는 나무가우는 것일까?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니 이는 종이 우는 것도 나무가 우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내 마음이 우는 것이었습니다. 그때 “내가 너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와 꽃이 되었다.” 라는 시의 한 구정이 생각이 났습니다. 또한 내가 내 자신을 힘들게 하고 있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나를 힘들게 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내 자신을 힘들게 하고 있었던 것이었습니다. 모든 것이 내 마음속에서 시작되고 마음속에서 다투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니 부끄러웠습니다. 또한 내가 그 자리에 있는 만큼 대장부가 되어야 된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나는 무엇인가? 어떻게 살아가야하는지 생각을 많이 합니다. 하지만 너무 어려운 부분이라는 생각과 답 또한 멀리 있어서 힘들어 보입니다. 그래서 책도 보고 좌선도하며 답을 구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제가 불교미술을 공부하는 학생인 만큼 그것을 작품으로서 나타내 보려고 합니다.
 
 
 
 
  예전의 다짐과 다르지만 다른 공간에서 열심히 산다고 생각 했습니다. 하지만 아직도 이 바람 저 바람에 휘둘리며 살아가는 어쩔수 없는 중생인것 같아 부끄러움이 커집니다. 하늘을 뚫을듯 솟은 소나무가 부럽고 또한 이렇게 흔들리며 살아가는것이 부끄럽습니다.
 종성이가 지심으로 불, 법, 승 삼보에 귀의합니다.
 주인공 당신의 나의 근본임을 잊지 않겠습니다.


   심묘:
저도 요즘 한참 하는 고민이라 공감되는 부분이 많아서 글을 남겨 봅니다.
요즘은 마음공부가 힘들고 멀게만 느껴지고
아무것도 아닌 일에 흔들리는 제 자신이 안타깝고 부끄럽습니다.
사람이 사는 게 무엇이고 왜 살아가야하는 지 생각이 올라오면
그 생각에 빠져 아둥바둥 거리는 제 모습에 서글퍼지기도 합니다.
답은 내 안에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것을 밖에서 구하려 하고 답답해 하기만 한 것은
주인공과 나를 둘로 보고 제 근본에 대한 믿음이 부족해서 인 것 같습니다.
지금 이 답답함도 내 그본인 주인공을 간절하고 절실히 믿고 나가게 하기 위함이라고 생각하고
끝까지 포기하지않고 정진하겠습니다.
저도 요즘 한참 하는 고민이라 공감되는 부분이 많아서 글을 남겨 봅니다. 요즘은 마음공부가 힘들고 멀게만 느껴지고 아무것도 아닌 일에 흔들리는 제 자신이 안타깝고 부끄럽습니다. 사람이 사는 게 무엇이고 왜 살아가야하는 지 생각이 올라오면 그 생각에 빠져 아둥바둥 거리는 제 모습에 서글퍼지기도 합니다.답은 내 안에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것을 밖에서 구하려 하고 답답해 하기만 한 것은 주인공과 나를 둘로 보고 제 근본에 대한 믿음이 부족해서 인 것 같습니다. 지금 이 답답함도 내 그본인 주인공을 간절하고 절실히 믿고 나가게 하기 위함이라고 생각하고 끝까지 포기하지않고 정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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