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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원장 스님 법문

삼월 보름 법문 (대행큰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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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실히 봄이 온 것 같군요.
여러분들도 그렇게 느끼시죠?
여러분들 마음 속에도 사계절 없는 봄이 와야 되겠습니다.
아시겠죠?
사계절 없는 봄. 마음 속의 봄맞이. 여여하게 활보할 수 있는 봄맞이 말입니다.

우리들이 정신적인 50%의 맛을 모른다면 물질계의 50%에서 허덕이다가 꺼져버리게 됩니다.
영원한 것이 뭔지 허망한 것이 뭔지 그것조차도 가늠 못하고 갈 것입니다.
그리고 영원토록 벗어나지 못할 것입니다.
여러분들의 몸이 살아 있을 때에 모든 상대가 있고 인연의 법칙이 있고
그런 반면에 공부할 수 있는 것입니다.
몸이 없어지면 더하고 덜함도 없기 때문에 벗어날 길이 없습니다.

옛 선지식들께서는 망상과 졸음에 대해서 상당히 말씀하셨습니다.
관할 때는 반드시 졸지 말아야 하고, 망상을 피우지 말아야 한다는 얘기죠.
그런데 그 졸음과 망상이 일어난다는 것에 걸린다면 한 발자욱도 떼어놓을 수 없을 것입니다. 그건 왜냐하면 잔다 자지 않는다가 붙어서는 즉시 들어갈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망상이다, 망상이 아니다라는 게 붙으면 거기에는 직결되지 못합니다.

물론 처음 신심을 낼 때에는 초발심자경문도 있고, 계율을 엄하게 지켜야 하고, 졸음도 물리치고 망상도 물리쳐야 되겠죠.
하지만 처음부터 살아가는 관습에 의해서 시간과 공간을 두어서는 안됩니다.

옛 조사들의 뒷발자취를 쫓아만 가서도 안되고 못났든 잘났든 자기 발자취가 얼마나 컸나, 한 짝이 크고 한 짝이 작으므로 작은 한 쪽이 얼마나 컸는가 하고 열심히 자기 작은 한 쪽 발을 키워야 합니다.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서 불바퀴는 돌아가고 있습니다. 고정된 게 하나도 없이 돌아가기 때문에 색과 공이 둘이 아니다 라고 이야기하는 겁니다.

그래서 우리가 공부하는 데 졸음을 쫓으려고 칼을 목에다 대고 하느니보다 죽는 것, 사는 것, 자는 것, 깨는 것 모든 생활 자체가 그대로 참선이라는 것을 알고, 내가 이 세상에 나왔기에 나로 인해서 세상이 벌어졌으므로 나로부터 알아야 하며, 졸음을 쫓아야겠다고 하는 것도 거기 놓고 돌아가는 자체가 바로 들어가는 코스(길)입니다. 그렇게 생각을 함으로써 그대로 둘이 아니게 얽혀서 돌아가게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감응이 되고 생각이 깊어집니다.

부모에게서 몸을 받는다는 것은 집(육신)만 받는 것일 뿐 자기가 나오기 이전 영혼과 그 나오기 이전 살 때의 악업·선업을 지은 인연들이 전부 내 몸 속에 들어 있습니다. 그런데 그 몸 속의 중생들은 잘되고 잘못되고를 모릅니다. 그리고 악업 짓고 선업 지은 그 인연에 의해서 독 안에 들어도 못 면하게 입력이 되었다가 착착 나옵니다.

현실로 그렇게 나오기 때문에 선한 일을 하게도 하고, 강도질을 하게도 하며, 사람을 죽이는 일도 서슴지 않고 하게도 하고, 화를 내기도 하고,욕도 하게 하며, 병이 오게도 하니 그걸 어떻게 다 말로 표현하리까? 다가오는 그 모든 고를 말입니다. 그러면 닥쳐오는 그 모든 고를 어떻게 해야 녹일 수 있는가? 표현하자면 용광로에 넣기만 하면 녹아버린다고 하고 불바퀴에 닿기만 해도 타버린다고 합니다.

그러나 말로만 하는 것이 아닙니다. 생각을 해 보십시오. 수없이 일어나는 생각에 왜 일일이 신경을 씁니까? 그저 일어나는 대로 불바퀴에 놓아야 합니다.

고정됨이 없이 돌아가기에 주인공이라고 하는데, 모든 것이 주인공에서 나오는 것이니 주인공에서 해결할 수 있고, 주인공 자리를 깨닫게 할 수 있는 것도 주인공이라는 걸 믿고 진실하게 구해야 내가 있다는 소식을 가져올 수 있는 것이죠. 졸립다 하면 졸립지 않는 것이 따르고 망상이다 하면 망상 아닌 것이 따라 붙으니, 도무지 수박을 놓고서 아무리 이리 굴리고 저리 굴려 봐도 수박의 맛이 나오지 않듯이 말입니다.

과거의 씨가 현실의 씨가 되었다는 사실을 모르고 자꾸 과거로만 돌아가려고 하면서 씨를 찾으려고 해서는 안됩니다. 그 모든 게 사람의 한 생각에 몰락 벗어날 수 있으니, '돈오'다 '점수'다 할 것이 없는 것입니다. 그것은 이름일 뿐이죠. 스스로 나와 내가 상봉을 해야 그때부터 진짜 공부를 할 수 있는 계기가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첫째도 죽어야 하고, 둘째도 죽어야 하고, 셋째도 죽어야 한다는 얘기죠.
내가 항상 이런 말을 하죠. 내 집에 전화부터 놓아야 남의 집에서 전화도 오고 남의 집으로 전화도 할 수 있는 것이지, 내 집에 전화를 놓지 않고 전화가 올 때를 바라고 있다면 안된다구요. 천년 만년 있어도 안되는 것이죠. 어두우면 내가 불을 켜는 것이요, 졸리면 자는 법이요, 배고프면 먹는 법이요, 똥이 마려우면 화장실에 가서 똥을 누는 법인데 거기 무슨 이유가 붙겠습니까?

망상이다 망상이 아니다 라는 게 붙으면 직결 들어갈 수가 없습니다. 진실한 일념으로 구해야 구해지지 진실한 일념으로 구하지 않는다면 참 나의 소식을 얻을 수가 없습니다. 이 삼천대천세계 우주의 근본 자체가 외국에서 말하는 것은 블랙홀이라고 합니다만, 우리는 불바퀴라고 했습니다.

전체로 말할 것 같으면 불바퀴요, 전체가 둘이 아니면서도 네가 있고, 내가 있는 걸로 봐서는 우리 개인 혹성 하나가 또 불바퀴라는 얘기입니다. 불바퀴 자체가 '공'도 아니요, '색'도 아니라고 한 것은 '색과 공'이 둘이 아니게 돌아가기 때문에 하는 말입니다.

지금 정신세계와 물질계가 같이 돌아가고 같이 작용을 하지, 물질계는 물질계대로 놀고 정신계는 정신계대로 따로 놉니까? 안 그렇죠? 생명이 있으니 살고, 생명이 있으니 생각을 하며, 생각을 하니까 몸이 움직이죠. 이것이 바로 동시에 돌아간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내 몸뚱이 혹성 하나가 개개인이지만, 포괄적으로 볼 때는 개개인으로 있는 것이 하나도 없다, 불바퀴가 쉬지 않고 여여하게 화해서 돌아갈 뿐이다 라고 말할 수 있겠죠. 쥘 수도 없고, 잡을 수도 없고, 볼 수도 없는 그 마음이 우주 전체에 직결되어 있고, 이 세상 살림살이 전체가 가설이 돼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몰라서는 안됩니다.

모든 일체 만물·만생, 보이는 중생들이나 보이지 않는 중생들이나, 보이는 부처나 보이지 않는 부처나 모두 포괄적으로 통하고 공생·공체·공식화하고 돌아가고 있습니다. 통하고만 돌아가고 있는 것이 아니라 공생이고, 공용이며, 바로 공식화하고 공심으로 돌아가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불교'입니다.
불교는 어느 한 부분에 국한되어 있는 게 아니라 포괄적인 끝간 데 없는 진리를 이름해서 불교라고 하는 것입니다.
불교라고 하는 이름이나 부처님이라고 하는 이름이 둘이 아닙니다.
부처님도 어떠한 것을 내가 했다고 할 수 없고,
어떠한 생각을 내가 했다고 할 수 없으며,
내가 어떤 말을 했다고 할 수 없는 반면에 부처님이라고 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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