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월 초하루 법문 (대행큰스님)
본문
무종의 뜻
저는 여러분들과 더불어 항상 같이 하지만, 지난번에는 여러분들과 만남이 없이 강 건너 갔다가 온 이래로 오늘 처음 만나는 분들도 계시고, 또 그 안에 만났던 분들도 계시리라 생각됩니다. 그러나 우리가 사방을 둘러보면 강 건너 이쪽이든 저쪽이든 멀고 가까움이 없겠지만, 인간이 살아나가는 데는 모두가 생활들이 이곳과는 달리 뛰면서 생각하고, 생각하면서 뛰는 너무나 바쁜 모습들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 쪽보다 여유가 좀 있는 편이죠. 교대로, 아내가 새벽에 들어오면 그때 남편이 직장에 나가는 이런 가정이 많았습니다. 다시 말해서 국내에서처럼 경전을 강의해 준다거나 길게 백팔 배나 오백 배를 시킨다거나 주문을 외운다거나, 또는 일정한 장소에서 좌선을 가르치는 이러한 방법으로는 어려우리만큼 급박하다는 걸 느꼈고, 또 그런 상황을 보았습니다.
그런데 우리나라도 앞으로 2, 3년만 지나면 남녀노소 모두가 지금보다는 더 바쁘게 뛰어야 하는 그런 계기가 도래하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또 젊은 사람 뿐만아니라 노인들도 그렇고 중년되신 분도 그렇고 우리 얘들까지도 지금보다 더 뛰어야 되지 안나 생각해 보고요, 그러려면 남을 쫓아가기보다는 앞장서서 갈 줄 아는 그러한 여러분이 되어야 합니다. 지금 우리가 절에 다닌다고 해서 그걸로만 만족해 하시면 아니 됩니다.
항상 말씀 드리는 것처럼, 생각하면서 뛰고 뛰면서 생각하는 생활이 바로 행선이자 참선인 것입니다. 그런 고로 자기 주인공을 믿는 마음, 항상 ‘나’라고 집착하는 자체를 녹여버리는 마음, 즉 말하자면 아집을 놓아버리라는 말입니다. 행을 할 때는 마음으로부터의 행을 하므로 항상 평등행을 할 수 있는 그런 마음을 가지시고요.
왜 이런 말씀을 드리느냐 하면, 여러분들과 저와 이렇게 같이 앉았을 때는 전부 도반인 것입니다. 그리고 같이하는 것입니다.
여러분들께서 이 도리를 깨달으면 아시겠지만 가끔 저는 이런 생각을 합니다. ‘참, 너무너무 광대무변한 진리이며 끝없는 공부로구나’하고 말입니다. 말로는 어떻게 표현할 수 없으리만큼 엄청남에도 불구하고, 여러분들은 그냥 절에 다니면서, ‘이만하면 그냥 이렇게 공부하는 거지’이렇게만 생각하시지, 진정 마음 공부할 수 있는 조건이 스스로 갖추어져 있다는 것을 생각하지 않는 것 같아요.
다시 말해서, 여러분은 지수화풍이 바탕으로 되어있기 때문에 광력이나 전력, 자력, 통신력이 충만하게 갖추어져 있어, 우리가 지구학, 천체물리학 등 모든 과학분야를 연구할 수 있는 겁니다. 우리들에게는 자비의 칼을 가지고 선의를 베풀어서 선과 악의 모든 조건을 마음의 판단으로 올릴 건 올리고, 내릴 건 내릴 수 있는 여건이 손 안에 쥐어져 있다고 봅니다.
그러면 지금 어떠한 물질들이 나오고 있습니까? 오늘날 과학문명 즉 물질문명이 고도로 성장하여, 그 연구들을 통해서 생산되는 물건들로 서로 파괴시키고, 혹은 다 죽이고 나만 살아야겠다는 아주 극단적이며 위험한 생각들로 차 있으며 세계적으로 발생하는 모든 문제들도 그런 점에서 벌어지고 있음을 묵과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니 이런 것들을 우리가 제재하고 타개하고 조절할 수 있는 마음이 필요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러한 재료가 여러분 앞에 있다는 사실을 밝혀드리는 겁니다.
여러분들이 보지 못하고, 또는 해보지 못하고 실험도 못해보고 맛도 모르고, 이런다면은 그 하나를 하나마저도 닿지 못하며 타개도 못하며 조절도 못합니다. 그리고 한걸음 더 나아가, 우리가 내 몸을 내가 벗어나서 바른대로 이끌 수 있는 능력을 얻어야, 즉 자유자재 할 수 있어야 가정도 이끌어 나갈 수 있고 사회도 이끌어 나갈 수 있으며, 또한 가정을 잘 지킴으로써 나라도 잘 지킬 수 있으려니와 세계도 잘 조절할 수 있는 것입니다.
전에도 얘기했지만, 우리들이 어떻게 역사를 가져왔습니까?
내 집만 편안하다고 해서 해결되는 게 아니라 넓은 마음으로 부지런히 연구하고 실험하고 체험해서 철저히 지킴으로써 행복도 가져오고, 또한 그런 바탕에서 역사도 만들어 오고 그러는 거지, 여러분들이 안이하게 그냥저냥 왔다갔다 하다가 가을날 낙엽 떨어지듯이 떨어지면 그냥 그뿐이다라고 생각하신다면, 공이 색이요 색이 공인 참도리를 알 수 없을 것입니다.
그대로 여러분들의 마음이 곧 실상인 것을 체득할 수가 없다는 얘기죠.
도저히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것인데 여러분들에게 운 만이라도 띄워 주려고 하는 것은, 그렇게 되어있기 때문에, 지금 강대국에선 꾸준히 연구를 해서, 어떻게 하면 빛처럼 빨리 그 모든 것을 타개(打開)할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아주 작은 덩어리로 큰 덩어리를 다 쪼갤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음과 양을 한데 합친 탐지기나 망원경 컴퓨터까지도 조절해서 모든 걸 다 알고, 다 보고, 다 행해서 모든 것을 빨리 파괴할 수 있을까 하는 이런 연구들을 서로 할 양으로 노력들을 하고 있는데, 우리는 이 공부를 해서 그 모든 것을 조절하며 너무 기승을 부리고 올라오고, 또 연구를 빨리 해서 자기는 살고 상대는 죽이려 하는 그런 문제나 생각들을 잘 조절해서 안유하게 만들어 주는 이러한 마음가짐을 가져야 합니다.
지금 헌재는 너무 빨라서, 양쪽이 다 죽느냐, 양쪽이 다 죽지 않고 한쪽만이라도 살릴 수 있느냐 하는 이런 연구들을 눈을 부릅뜨고 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들이 이 공부를 해서, 그것을 모두 보고 듣고 과거를 알고 현재를 알고, 가고 옴이 없이 가고 올 줄 아는 이것이, 한마디로 말하면 자력이지만 과학적으로는 세 가지, 네 가지를 첨가해서 끌어당기는 그런 능력을 연구하는 것이므로, 여러분들은 각자에게 모든 재료가 다 갖추어져 있다는 사실을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여러분들이 납득할런지 모르지만, 광력 · 전력 · 자력 · 통신력이 충만히 자기한테 주어져 있기 때문에, 보이지 않는 데서도 보이는 것을 끌 수 있는 힘이 있다는 얘기죠. 믿어지지 않죠!
물질로 볼 땐 자석이라 하지만 우리들 마음 공부에는 자력이라고 합니다.
난 여러분들처럼 전문용어를 잘 알지는 못하지만, 어떻게 하면 여러분들이 잘 알아들을 수 있을까 하는 마음으로 진실하게는 합니다. 그 진실한 마음을 여러분들이 읽을 수 있으리라고 봅니다. 그렇다면 그만큼, 보이지 않는 데서 끌 수 있는 힘이 여러분한테도 주어져 있다는 겁니다. 또 줄 수도 있다는 겁니다. 그래서 부처니 말씀이 ‘무한의 모든 것을 다 내도 줄지 않고 모든 것을 다 넣어도 두드러지지 않느니라’했습니다.
만약에 삼천대천세계 우주전체를, 아니 그것 뿐만 아니라 사생의 천차만별로 되어있는 것을 좁쌀 한 알갱이에 다 운집할 수 있다는 그 사실, 그래도 그릇이 작지 않다는 그 뜻입니다. 여러분들은 열심히 공부한다면, 그렇게 할 수 있고도 남음이 있는 거죠. 그러니까 이것이 어마어마한 공부다 이 얘깁니다. 절에 다니면서 음식이나 놓고 비는 것이 문제가 아닙니다.
자력신앙……, 곧 자석이라고 표현해 봅시다. 자석이 이만한 덩어리라면 요만한 덩어리를 끌 수가 없습니다. 오히려 거기 붙어서 떨어지지 않아요. 큰 바위에 벼랑을 가져다 붙이는 꼴이죠.
그러니까 자석이 크다면…, 이 세상을 다 덮고도 남음이 있는 자석이라면 모두 거기에 붙어서 떨어지지 않을 겁니다. 그러한 요소가 있기 때문에, 태양계도 월세계도 모든 게 그 분야에서 떠나지 않는 겁니다. 그 덩어리 바깥에서 떠날 수가 없습니다. 끌어당기는 힘이 있기 때문에.
물방울같이 아주 미세한, 물질 아닌 물질이 덩어리를 돌면서 모든 것을 자원을 합니다. 만약에 자원을 안한다면 터져버릴 지도 모르죠. 안에서는 안에 대로 조절해서 내면 내는 대로 복사체제로서의 그 벌어지는 문제들을 들이고 내게 조절을 하죠. 통신도 하구요.
그러면 우리들의 마음은 어떤가요? 우리들 마음은 찰나찰나 바뀌면서 자동적으로 돌아가지요. 이것이 자동기입니다. 여러분들이 어디 뭉쳐서 매어져 있는 게 아니라 자동기입니다. 지금 여러분들은 자유자재 할 수 있는 여건을 가진 자동기입니다. 자동적으로 마음내는 대로 살게끔 고등동물 즉 만물의 영장으로 나왔는데도, 여러분들은 과거의 습(習) 때문에 그 마음이 자기를 옭아매 놓고 있습니다.
예전 속담의 말이 있죠. ‘대장부의 걸음걸이는 한걸음을 뛰어도 천리를 뛰는데, 졸장부의 걸음걸이는 백리를 뛰어도 한걸음 뛴 것만 못하니라’
여러분들이 육신으로서 벌어먹으려고 돈을 쫓아서 뛰는 것보다, 느긋하게 앉아서 끌면은 거기에 다 붙어서 다가오게 만들어야 그게 한걸음을 뛰어도 뛰는 거지,몸뚱이로 그걸 쫓아서 뛰면 고달프죠. 병 생기죠, 화가 나니 집안 화목하지 못하죠, 일일이 손해예요, 일일이 손해……. (웃음)
어쩌면 좋습니까? 난 여러분들을 볼 때마다 답답할 때가 있어요. 그래서 어떤 때는 웃기도 하고 어떤 때는 울기도 하고 그럽니다. 그것도 여러분들을 위해서가 아닙니다. 나를 위해서지….
웬 줄 아세요? 여러분들이 나하고 둘이 아닌 까닭에 그렇습니다. 또 둘이 아닌 까닭에 나 하나도 없다는 결론이 나옵니다. 이 세상에 내 형제 아님이 어디 있고 내 부모 아님이 어디 있으며 내 자식 아님이 어디 있습니까? 이 몸뚱이는 한철 있다가 또 이 집 가서 한철, 저 집 가서 한철, 자식이 됐다가 형제가 됐다가 부모가 됐다가 이렇게 돌아가는데, 누구를 내 부모·자식이라고 할까요? 모든 것을 한데 합치면 남의 부모, 내 부모 가릴 필요가 없어요. 똑같이 생각하세요. 모두 내 부모 아님이 없으니까.
난 어떤 때, 학생들이 와서 괴롭게 눈물을 흘릴 때면 가슴이 무척 아파요. 내 마음을 내가 더 잘 아니까요. 사람은 거짓 마음이 없어야 하고 ‘나’라는 마음이 없어야 합니다. 신의와 도의를 지킬 줄 아는 마음, 이 마음을 떠나서는 아무 것도 없어요.
이 공부라는 것이, 지금 새로이 부처님이 말씀하신 그 모든 경서를 되돌려 보면은, 현재 과학이 발달되고 자동적으로 물질이 형성되어 있어 돌아가고 혹성 별성도 자동적으로 돌아가고 있다는 것을 모르고 있다는 겁니다.
그래서 먹고 사는 여러분들과 같은 세계, 냄새 맡고 사는 영령들의 세계, 마음으로 사는 세계, 이렇게 세 가지로 분류할 수가 있죠. 깨달은 사람은 마음으로 살 수 있지만 깨닫지 못하고 죽은 영령들은 냄새를 맡고 살기 때문에 시식을 지내서 천도를 해주는 등 온통 이 야단이 나는 거죠. 이 현실에서 자유자재하고 살면서 그 의식을 다 떠났을 때는, 죽어도 마음대로 자유자재 할 수 있죠.
그러기 때문에 마음으로 살아야지, 냄새나 맡고 돌아다니면서 지지하게 살지 말아야 한다는 말이죠.
알아듣기 쉽게 하느라고 내가 이래요. 그러니까 마음으로 살면은 보고 듣고 다 할 줄 알고, 나 아님이 없고 어디를 가나 통과, 통과예요. 표시로 말하자면, 주장자 하나 들고 동그란 거 하나 거기 얹혀 있는 힘 하나예요. 이것만 들면 그대로 아무데고 통과, 통과, 통과예요. 다…….
그런데 묘한 사람이 부유하게 살았는데, 어찌나 욕심이 많은지 남의 것을 뺏아 먹으려고 하는 그런 사람이었지요. 옛날이랄 것도 없어요. 내가 지금 보고 있어요. 저기 어떤 사람이 있어요. 남의 돈 삼천만원 꿔 가지고 몇 해를 끌다가 어떻게 해서든지 나중에는 제 걸로 만들어요. 남의 것을 그냥 빼앗아 자기 것으로 만들려고 애쓰죠. 그렇게 해서 재산을 많이 모았으니 아주 악조이라고 볼 수 있죠.
그런데 선에는 악종도 없고 선종도 없지만, 우리가 사는 이 세계는 악종도 있고 선종도 있어서 악종은 선종을 시험하려고 하고 선종의 도리를 모르는 시험은 무의식 중에 끌려서 거기 먹혀요. 그러나 부처님의 뜻은 선종의 입을 벌리면 모든 악의 조건이 전부 빨려 들어 가서, 그 불바퀴에 굴러 나오면 그냥 천도가 되는 거죠. 마음이 그렇게 악의 종자였었는데, 불씨로서의 자비한 마음으로 변하여 나오게 되죠. 그러기 때문에 건질 수 있는 거죠.
난 가끔, 큰스님들께서 이런 말을 하시는 것을 들었습니다. ‘병을 고치는 건 도가 아니다’라고요. 그건 나도 압니다.
그러나 도가 있기 이전에, 도를 찾으려고 하기 이전에 내 아픔같이 생각하고 앞에 있는 걸 해결하고 넘어가란 말입니다. 앞에 닥치는 문제를 마다하고 큰 것을 잡으려고 뛰다가는 구덩이에 빠지고 말죠.
‘도를 이룬다, 도를 찾는다’하기 이전에 사람 노릇을 한다면 그 모두가 내 아픔같이 생각되고, 내 몸같이 생각되고, 내 부모 내 형제같이 생각되며, 도살장에 끌려가는 소 한 마리를 본다 해도 그 소 마음을 내 마음과 더불어 하나로 만들어 인간으로 환생하게 할 수 있는 거죠.
그 소 마음을 내 마음 속에 탁 넣으면 그 소가 인간의 그런 마음을 전부 알죠. 전부 아니, 한 찰나에 사람이 된 거지, 소가 아니라 육신만 없다 뿐이지 이건 사람이 된 거죠. 그 소의 의식을 빼면 그 육신은 마취한 것과 같아서 아픔을 느끼지 못하게 되죠. 모습만 각각이지, 그 소의 슬픈 마음과 우리들의 마음이 어찌 둘이겠습니까?
만약에 여러분들이 사형 선고를 받고 끌려간다고 가정했을 때의 그 마음과 소가 도살장에 끌려갈 때의 그 마음이 뭐가 다르겠습니까? 아마, 똑같을 겁니다. 그 마음을 갖다가 내 마음으로 한데 넣었을 때에 두드러지지도 않을 뿐만 아니라, 내 마음이랑 아예 같이 해서 그 마음이 내가 알고 있는 의식을 다 알아 버리니까, 그냥 내가 되는 거죠. 내가 돼서, 내가 또 좋은 대로 천도를 해서, 인간으로서의 천거를 해 내 놓으면 어디 가서 금방 태어나죠.
여러분, 여러분이 아프면 나도 아프다는 사실을 아십니까? 아니, 나 뿐이 아니죠. 만약에 여러분의 자식이 곤궁에 빠졌다고 했을 때, 무슨 큰 사고를 당했다고 했을 때, 그 순간의 놀란 마음이 조금 진정되면서 눈에서 뼈저린 눈물이 흐를 때 여러분들은 어떻겠습니까? 다른 것들은 안 그럴까요? 모습이 다를지라도 그 마음은 우리들 마음과 똑같습니다.
여러분들은 이 공부하러 다니는 것을 그냥 다니는 걸로 생각하지 마세요.
저는 여러분들과 더불어 항상 같이 하지만, 지난번에는 여러분들과 만남이 없이 강 건너 갔다가 온 이래로 오늘 처음 만나는 분들도 계시고, 또 그 안에 만났던 분들도 계시리라 생각됩니다. 그러나 우리가 사방을 둘러보면 강 건너 이쪽이든 저쪽이든 멀고 가까움이 없겠지만, 인간이 살아나가는 데는 모두가 생활들이 이곳과는 달리 뛰면서 생각하고, 생각하면서 뛰는 너무나 바쁜 모습들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 쪽보다 여유가 좀 있는 편이죠. 교대로, 아내가 새벽에 들어오면 그때 남편이 직장에 나가는 이런 가정이 많았습니다. 다시 말해서 국내에서처럼 경전을 강의해 준다거나 길게 백팔 배나 오백 배를 시킨다거나 주문을 외운다거나, 또는 일정한 장소에서 좌선을 가르치는 이러한 방법으로는 어려우리만큼 급박하다는 걸 느꼈고, 또 그런 상황을 보았습니다.
그런데 우리나라도 앞으로 2, 3년만 지나면 남녀노소 모두가 지금보다는 더 바쁘게 뛰어야 하는 그런 계기가 도래하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또 젊은 사람 뿐만아니라 노인들도 그렇고 중년되신 분도 그렇고 우리 얘들까지도 지금보다 더 뛰어야 되지 안나 생각해 보고요, 그러려면 남을 쫓아가기보다는 앞장서서 갈 줄 아는 그러한 여러분이 되어야 합니다. 지금 우리가 절에 다닌다고 해서 그걸로만 만족해 하시면 아니 됩니다.
항상 말씀 드리는 것처럼, 생각하면서 뛰고 뛰면서 생각하는 생활이 바로 행선이자 참선인 것입니다. 그런 고로 자기 주인공을 믿는 마음, 항상 ‘나’라고 집착하는 자체를 녹여버리는 마음, 즉 말하자면 아집을 놓아버리라는 말입니다. 행을 할 때는 마음으로부터의 행을 하므로 항상 평등행을 할 수 있는 그런 마음을 가지시고요.
왜 이런 말씀을 드리느냐 하면, 여러분들과 저와 이렇게 같이 앉았을 때는 전부 도반인 것입니다. 그리고 같이하는 것입니다.
여러분들께서 이 도리를 깨달으면 아시겠지만 가끔 저는 이런 생각을 합니다. ‘참, 너무너무 광대무변한 진리이며 끝없는 공부로구나’하고 말입니다. 말로는 어떻게 표현할 수 없으리만큼 엄청남에도 불구하고, 여러분들은 그냥 절에 다니면서, ‘이만하면 그냥 이렇게 공부하는 거지’이렇게만 생각하시지, 진정 마음 공부할 수 있는 조건이 스스로 갖추어져 있다는 것을 생각하지 않는 것 같아요.
다시 말해서, 여러분은 지수화풍이 바탕으로 되어있기 때문에 광력이나 전력, 자력, 통신력이 충만하게 갖추어져 있어, 우리가 지구학, 천체물리학 등 모든 과학분야를 연구할 수 있는 겁니다. 우리들에게는 자비의 칼을 가지고 선의를 베풀어서 선과 악의 모든 조건을 마음의 판단으로 올릴 건 올리고, 내릴 건 내릴 수 있는 여건이 손 안에 쥐어져 있다고 봅니다.
그러면 지금 어떠한 물질들이 나오고 있습니까? 오늘날 과학문명 즉 물질문명이 고도로 성장하여, 그 연구들을 통해서 생산되는 물건들로 서로 파괴시키고, 혹은 다 죽이고 나만 살아야겠다는 아주 극단적이며 위험한 생각들로 차 있으며 세계적으로 발생하는 모든 문제들도 그런 점에서 벌어지고 있음을 묵과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니 이런 것들을 우리가 제재하고 타개하고 조절할 수 있는 마음이 필요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러한 재료가 여러분 앞에 있다는 사실을 밝혀드리는 겁니다.
여러분들이 보지 못하고, 또는 해보지 못하고 실험도 못해보고 맛도 모르고, 이런다면은 그 하나를 하나마저도 닿지 못하며 타개도 못하며 조절도 못합니다. 그리고 한걸음 더 나아가, 우리가 내 몸을 내가 벗어나서 바른대로 이끌 수 있는 능력을 얻어야, 즉 자유자재 할 수 있어야 가정도 이끌어 나갈 수 있고 사회도 이끌어 나갈 수 있으며, 또한 가정을 잘 지킴으로써 나라도 잘 지킬 수 있으려니와 세계도 잘 조절할 수 있는 것입니다.
전에도 얘기했지만, 우리들이 어떻게 역사를 가져왔습니까?
내 집만 편안하다고 해서 해결되는 게 아니라 넓은 마음으로 부지런히 연구하고 실험하고 체험해서 철저히 지킴으로써 행복도 가져오고, 또한 그런 바탕에서 역사도 만들어 오고 그러는 거지, 여러분들이 안이하게 그냥저냥 왔다갔다 하다가 가을날 낙엽 떨어지듯이 떨어지면 그냥 그뿐이다라고 생각하신다면, 공이 색이요 색이 공인 참도리를 알 수 없을 것입니다.
그대로 여러분들의 마음이 곧 실상인 것을 체득할 수가 없다는 얘기죠.
도저히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것인데 여러분들에게 운 만이라도 띄워 주려고 하는 것은, 그렇게 되어있기 때문에, 지금 강대국에선 꾸준히 연구를 해서, 어떻게 하면 빛처럼 빨리 그 모든 것을 타개(打開)할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아주 작은 덩어리로 큰 덩어리를 다 쪼갤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음과 양을 한데 합친 탐지기나 망원경 컴퓨터까지도 조절해서 모든 걸 다 알고, 다 보고, 다 행해서 모든 것을 빨리 파괴할 수 있을까 하는 이런 연구들을 서로 할 양으로 노력들을 하고 있는데, 우리는 이 공부를 해서 그 모든 것을 조절하며 너무 기승을 부리고 올라오고, 또 연구를 빨리 해서 자기는 살고 상대는 죽이려 하는 그런 문제나 생각들을 잘 조절해서 안유하게 만들어 주는 이러한 마음가짐을 가져야 합니다.
지금 헌재는 너무 빨라서, 양쪽이 다 죽느냐, 양쪽이 다 죽지 않고 한쪽만이라도 살릴 수 있느냐 하는 이런 연구들을 눈을 부릅뜨고 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들이 이 공부를 해서, 그것을 모두 보고 듣고 과거를 알고 현재를 알고, 가고 옴이 없이 가고 올 줄 아는 이것이, 한마디로 말하면 자력이지만 과학적으로는 세 가지, 네 가지를 첨가해서 끌어당기는 그런 능력을 연구하는 것이므로, 여러분들은 각자에게 모든 재료가 다 갖추어져 있다는 사실을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여러분들이 납득할런지 모르지만, 광력 · 전력 · 자력 · 통신력이 충만히 자기한테 주어져 있기 때문에, 보이지 않는 데서도 보이는 것을 끌 수 있는 힘이 있다는 얘기죠. 믿어지지 않죠!
물질로 볼 땐 자석이라 하지만 우리들 마음 공부에는 자력이라고 합니다.
난 여러분들처럼 전문용어를 잘 알지는 못하지만, 어떻게 하면 여러분들이 잘 알아들을 수 있을까 하는 마음으로 진실하게는 합니다. 그 진실한 마음을 여러분들이 읽을 수 있으리라고 봅니다. 그렇다면 그만큼, 보이지 않는 데서 끌 수 있는 힘이 여러분한테도 주어져 있다는 겁니다. 또 줄 수도 있다는 겁니다. 그래서 부처니 말씀이 ‘무한의 모든 것을 다 내도 줄지 않고 모든 것을 다 넣어도 두드러지지 않느니라’했습니다.
만약에 삼천대천세계 우주전체를, 아니 그것 뿐만 아니라 사생의 천차만별로 되어있는 것을 좁쌀 한 알갱이에 다 운집할 수 있다는 그 사실, 그래도 그릇이 작지 않다는 그 뜻입니다. 여러분들은 열심히 공부한다면, 그렇게 할 수 있고도 남음이 있는 거죠. 그러니까 이것이 어마어마한 공부다 이 얘깁니다. 절에 다니면서 음식이나 놓고 비는 것이 문제가 아닙니다.
자력신앙……, 곧 자석이라고 표현해 봅시다. 자석이 이만한 덩어리라면 요만한 덩어리를 끌 수가 없습니다. 오히려 거기 붙어서 떨어지지 않아요. 큰 바위에 벼랑을 가져다 붙이는 꼴이죠.
그러니까 자석이 크다면…, 이 세상을 다 덮고도 남음이 있는 자석이라면 모두 거기에 붙어서 떨어지지 않을 겁니다. 그러한 요소가 있기 때문에, 태양계도 월세계도 모든 게 그 분야에서 떠나지 않는 겁니다. 그 덩어리 바깥에서 떠날 수가 없습니다. 끌어당기는 힘이 있기 때문에.
물방울같이 아주 미세한, 물질 아닌 물질이 덩어리를 돌면서 모든 것을 자원을 합니다. 만약에 자원을 안한다면 터져버릴 지도 모르죠. 안에서는 안에 대로 조절해서 내면 내는 대로 복사체제로서의 그 벌어지는 문제들을 들이고 내게 조절을 하죠. 통신도 하구요.
그러면 우리들의 마음은 어떤가요? 우리들 마음은 찰나찰나 바뀌면서 자동적으로 돌아가지요. 이것이 자동기입니다. 여러분들이 어디 뭉쳐서 매어져 있는 게 아니라 자동기입니다. 지금 여러분들은 자유자재 할 수 있는 여건을 가진 자동기입니다. 자동적으로 마음내는 대로 살게끔 고등동물 즉 만물의 영장으로 나왔는데도, 여러분들은 과거의 습(習) 때문에 그 마음이 자기를 옭아매 놓고 있습니다.
예전 속담의 말이 있죠. ‘대장부의 걸음걸이는 한걸음을 뛰어도 천리를 뛰는데, 졸장부의 걸음걸이는 백리를 뛰어도 한걸음 뛴 것만 못하니라’
여러분들이 육신으로서 벌어먹으려고 돈을 쫓아서 뛰는 것보다, 느긋하게 앉아서 끌면은 거기에 다 붙어서 다가오게 만들어야 그게 한걸음을 뛰어도 뛰는 거지,몸뚱이로 그걸 쫓아서 뛰면 고달프죠. 병 생기죠, 화가 나니 집안 화목하지 못하죠, 일일이 손해예요, 일일이 손해……. (웃음)
어쩌면 좋습니까? 난 여러분들을 볼 때마다 답답할 때가 있어요. 그래서 어떤 때는 웃기도 하고 어떤 때는 울기도 하고 그럽니다. 그것도 여러분들을 위해서가 아닙니다. 나를 위해서지….
웬 줄 아세요? 여러분들이 나하고 둘이 아닌 까닭에 그렇습니다. 또 둘이 아닌 까닭에 나 하나도 없다는 결론이 나옵니다. 이 세상에 내 형제 아님이 어디 있고 내 부모 아님이 어디 있으며 내 자식 아님이 어디 있습니까? 이 몸뚱이는 한철 있다가 또 이 집 가서 한철, 저 집 가서 한철, 자식이 됐다가 형제가 됐다가 부모가 됐다가 이렇게 돌아가는데, 누구를 내 부모·자식이라고 할까요? 모든 것을 한데 합치면 남의 부모, 내 부모 가릴 필요가 없어요. 똑같이 생각하세요. 모두 내 부모 아님이 없으니까.
난 어떤 때, 학생들이 와서 괴롭게 눈물을 흘릴 때면 가슴이 무척 아파요. 내 마음을 내가 더 잘 아니까요. 사람은 거짓 마음이 없어야 하고 ‘나’라는 마음이 없어야 합니다. 신의와 도의를 지킬 줄 아는 마음, 이 마음을 떠나서는 아무 것도 없어요.
이 공부라는 것이, 지금 새로이 부처님이 말씀하신 그 모든 경서를 되돌려 보면은, 현재 과학이 발달되고 자동적으로 물질이 형성되어 있어 돌아가고 혹성 별성도 자동적으로 돌아가고 있다는 것을 모르고 있다는 겁니다.
그래서 먹고 사는 여러분들과 같은 세계, 냄새 맡고 사는 영령들의 세계, 마음으로 사는 세계, 이렇게 세 가지로 분류할 수가 있죠. 깨달은 사람은 마음으로 살 수 있지만 깨닫지 못하고 죽은 영령들은 냄새를 맡고 살기 때문에 시식을 지내서 천도를 해주는 등 온통 이 야단이 나는 거죠. 이 현실에서 자유자재하고 살면서 그 의식을 다 떠났을 때는, 죽어도 마음대로 자유자재 할 수 있죠.
그러기 때문에 마음으로 살아야지, 냄새나 맡고 돌아다니면서 지지하게 살지 말아야 한다는 말이죠.
알아듣기 쉽게 하느라고 내가 이래요. 그러니까 마음으로 살면은 보고 듣고 다 할 줄 알고, 나 아님이 없고 어디를 가나 통과, 통과예요. 표시로 말하자면, 주장자 하나 들고 동그란 거 하나 거기 얹혀 있는 힘 하나예요. 이것만 들면 그대로 아무데고 통과, 통과, 통과예요. 다…….
그런데 묘한 사람이 부유하게 살았는데, 어찌나 욕심이 많은지 남의 것을 뺏아 먹으려고 하는 그런 사람이었지요. 옛날이랄 것도 없어요. 내가 지금 보고 있어요. 저기 어떤 사람이 있어요. 남의 돈 삼천만원 꿔 가지고 몇 해를 끌다가 어떻게 해서든지 나중에는 제 걸로 만들어요. 남의 것을 그냥 빼앗아 자기 것으로 만들려고 애쓰죠. 그렇게 해서 재산을 많이 모았으니 아주 악조이라고 볼 수 있죠.
그런데 선에는 악종도 없고 선종도 없지만, 우리가 사는 이 세계는 악종도 있고 선종도 있어서 악종은 선종을 시험하려고 하고 선종의 도리를 모르는 시험은 무의식 중에 끌려서 거기 먹혀요. 그러나 부처님의 뜻은 선종의 입을 벌리면 모든 악의 조건이 전부 빨려 들어 가서, 그 불바퀴에 굴러 나오면 그냥 천도가 되는 거죠. 마음이 그렇게 악의 종자였었는데, 불씨로서의 자비한 마음으로 변하여 나오게 되죠. 그러기 때문에 건질 수 있는 거죠.
난 가끔, 큰스님들께서 이런 말을 하시는 것을 들었습니다. ‘병을 고치는 건 도가 아니다’라고요. 그건 나도 압니다.
그러나 도가 있기 이전에, 도를 찾으려고 하기 이전에 내 아픔같이 생각하고 앞에 있는 걸 해결하고 넘어가란 말입니다. 앞에 닥치는 문제를 마다하고 큰 것을 잡으려고 뛰다가는 구덩이에 빠지고 말죠.
‘도를 이룬다, 도를 찾는다’하기 이전에 사람 노릇을 한다면 그 모두가 내 아픔같이 생각되고, 내 몸같이 생각되고, 내 부모 내 형제같이 생각되며, 도살장에 끌려가는 소 한 마리를 본다 해도 그 소 마음을 내 마음과 더불어 하나로 만들어 인간으로 환생하게 할 수 있는 거죠.
그 소 마음을 내 마음 속에 탁 넣으면 그 소가 인간의 그런 마음을 전부 알죠. 전부 아니, 한 찰나에 사람이 된 거지, 소가 아니라 육신만 없다 뿐이지 이건 사람이 된 거죠. 그 소의 의식을 빼면 그 육신은 마취한 것과 같아서 아픔을 느끼지 못하게 되죠. 모습만 각각이지, 그 소의 슬픈 마음과 우리들의 마음이 어찌 둘이겠습니까?
만약에 여러분들이 사형 선고를 받고 끌려간다고 가정했을 때의 그 마음과 소가 도살장에 끌려갈 때의 그 마음이 뭐가 다르겠습니까? 아마, 똑같을 겁니다. 그 마음을 갖다가 내 마음으로 한데 넣었을 때에 두드러지지도 않을 뿐만 아니라, 내 마음이랑 아예 같이 해서 그 마음이 내가 알고 있는 의식을 다 알아 버리니까, 그냥 내가 되는 거죠. 내가 돼서, 내가 또 좋은 대로 천도를 해서, 인간으로서의 천거를 해 내 놓으면 어디 가서 금방 태어나죠.
여러분, 여러분이 아프면 나도 아프다는 사실을 아십니까? 아니, 나 뿐이 아니죠. 만약에 여러분의 자식이 곤궁에 빠졌다고 했을 때, 무슨 큰 사고를 당했다고 했을 때, 그 순간의 놀란 마음이 조금 진정되면서 눈에서 뼈저린 눈물이 흐를 때 여러분들은 어떻겠습니까? 다른 것들은 안 그럴까요? 모습이 다를지라도 그 마음은 우리들 마음과 똑같습니다.
여러분들은 이 공부하러 다니는 것을 그냥 다니는 걸로 생각하지 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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